정보화마을 고성 진부령흘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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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부령 정상의 피망마을... 흘리입니다.

    46번 도로를 굽이굽이 숨차게 따라 달리시다 보시면 진부령 표지판을 보시게 됩니다.
    진부령은 해발 532 미터로 높은 듯 한 고개이며, 주변의 미시령이나 한계령처럼 장엄한 맛은 없으나 聳出(용출)한 봉을 포근히 따뜻하게 감싸는 翠嵐(취람)의 맛은 勝(승)합니다.

    진부령 정상에서 표지판을 따라 작은 고개를 넘으면, 마산봉 밑 넓은 분지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동네 하늘아래 첫 동네라고도 하는 흘리 입니다. 이 마을은 첫째 피망 생산 단지로 향, 맛, 품질로 비교가 안 되는 전국제일의 피망 산지이며. 또한 고랭지 채소와 치커리 재배로도 고소득 마을입니다.

    흘리 마을을 감싸고있는 산은 말 등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마산봉(1052)이라 하는데. 금강산의 끝 줄기입니다 겨울이면 눈질(스키타는데) 좋은 눈이4-5M식 쌓이며, 또 다른 연고로 1958년 육군 산악스키부대 훈련장이 생겼고 이를 계기로 스키장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고 1975 - 1979까지 5회에 걸 전국체전동계스키대회 각종 경기가 열렸으며 1992년에는 제2회 아세아 주니어 알파인 대회도 개최하였으며, 이 스키장은 천혜의 산세로 바다와 금강산도 관조 할 수 있습니다 . 지금은 알프스리조트가 계속 발전 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진부령흘리정보화마을

    사진
    주소
    강원 고성군 간성읍 흘리(1,2,3리)
    위치
    동쪽으로는 선유실, 서쪽으로는 원통 인제
    남쪽으로는 속초 설악산 양양과 인접
    경제
    농업 및 관광 사업
    면적
    흘 1리 경지 63ha 임야 94ha
    흘 2리 경지 47ha
    흘 3리 경지 6.6ha 임야 34ha

    ※ 정보화마을 조성 완료보고회 : 2004. 10. 21
    ※ 정보화광장 오픈 : 2007. 4. 16

    실향민의 아픔과 개척의 역사

    사진

    흘리 마을은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전쟁의 수복지 입니다.
    전쟁 이후 한 동안은 통제구역으로 묶어 지역 주민들 조차 통행이 제한 되기도 하였으나, 이후 고장 주민들과 실향민들이 이 곳에 정착 하며, 산을 갈아 밭으로 만들어 가며 마을을 일구 었다고 합니다.
    지역 자체가 추운 지역이라 5월까지 눈이 내리는 일도 허다했으며, 초기에는 흉년과 추위에 많은 고생을 하였다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흘리의 모습은 예전의 그런 아픔의 흔적이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일치 단결되어진 힘과 새 농촌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 2000년 환경우수마을, 2001년 새 농촌 건설운동 등의 활동과 아울러 현재는 지역 내에서도 인정 받고 잘 사는 마을로 그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하늘아래 첫 동네 흘리...!!! 주변 산이 높아 흘리라 부릅니다.

    흘 1리

    하늘아래 첫 동네라고 하는 흘리 마을에 관한 유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겨울이 올 때마다 마을 고개에서 짙은 안개와 세찬 눈 바람이 불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이 고장을 흘리라 불렀다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 지역이 천 미터가 넘는 산들에 둘러 쌓인 지역이라는 의미로 뫼 봉우리 “흘”자를 사용하여 흘리라 불렀다 합니다.

    흘 2리

    중흘리란 이름으로 불리 우고 있는 마을로 해발 800M의 고랭지 지대로 1966년 강원도의 지침에 따라 이주한 실향민들이 임야를 밭으로 개간하며 마을이 생겼다 합니다. 한 때는 대단위 목장이 운영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억새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흘 3리

    조쟁이(조장리)라는 속칭을 갖고 있는 마을로 진부령 고갯길이 불편할 당시에 영동 및 영서 지역의 상인들이 물물교환을 하던 장소로, 아침 일찍 장이 선다는 의미에서 불리어 지게 되었다 합니다.